케빈에 대하여
ㅇ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요새 며칠 안되는 육아를 하면서 잘 느끼고 있다. 주변을 돌아봐도 다들 노력은 하고 있지만, 뭐가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육아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정확한 줄거리는 모른채, 그저 '부모의 교육이 자식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내용'이라는 약스포를 듣고 영화를 보게되었다.
ㅇ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온갖 말 안듣는 아이들이 나와서 부모의 속을 뒤집어 놓지만, 결국엔 부모의 잘못된 양육에서 나온 결과라는 식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 된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아이 행동의 대부분은 부모의 행동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속 케빈은 좀 다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인한 한 아이의 인생파탄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싸이코패스 아이를 둔 한 엄마의 처절한 생존기라 할 수 있겠다. 케빈과 같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영화 속 케빈의 엄마보다 더 열성적이고 적극적으로 아들에게 노력할 수 있을까? 싸이코패스 아이를 둔 부모에게 어떤 양육방침이 올바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케빈은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올 정도 수준의 문제아가 아니었다. 싸이코패스 급의 아이를 등장시켜놓고, 부모에게 해결책을 묻는다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케빈의 엄마를 욕하고 싶지 않다. 그가 아이를 학대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방치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아이가 싸이코패스였고, 사고를 저질렀다고 부모라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사람들의 폭력을 참아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케빈 엄마의 잘못된(?) 행동이라고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너무 힘들어하는 장면들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얽매인 본인의 삶에 대한 신세한탄 정도. 그 정도 행동으로로 모든 아이가 싸이코패스가 된다면 세상은 싸이코패스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ㅇ 케빈 엄마가 아이의 이상한 점을 깨닫고 정신과 치료를 일찍부터 받게 했다면 좀 더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들의 울분도 그런점에서 폭발했다면 이해가 된다. '왜 아이를 일찍부터 치료하지 않았느냐!' 라는 식의 분노말이다.)
ㅇ 그런 엄청난 일을 겪고서도,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케빈엄마에게 드는 측은한 마음때문에,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기분이 묘했다.